태풍, 집중호우, 지진, 정전 등의 재난은 단순히 물적 피해를 넘어서 우리의 ‘식생활 안전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칩니다.
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식재료 하나가, 재난 상황에서는 세균과 병원균의 온상이 될 수 있죠. 특히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서는 식중독 발생 가능성이 더욱 높아져, 한순간의 방심이 심각한 건강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1. 범람된 물과 접촉한 식품, 무조건 폐기
재난 발생 시 침수와 범람은 가장 흔한 피해 중 하나입니다.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침수 후 청소에만 집중하고, 범람된 물과 닿은 식재료와 식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.
▢ 침수된 물은 ‘세균의 농축액’입니다.
하천, 하수, 빗물, 생활 오수 등 온갖 오염원이 뒤섞인 범람수는 일반 물이 아닙니다. 이 물에는 장티푸스균, 살모넬라균, 대장균, 노로바이러스 등 각종 병원성 미생물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. 여기에 산업 폐수, 석유류, 각종 화학약품까지 포함되어 있다면, 단순히 '씻어서' 해결될 수준이 아닙니다.
▢ 닿기만 해도 오염된 것으로 간주
범람된 물이 닿은 식재료나 식품 포장지는 겉면만 오염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, 미세한 틈이나 포장 불량을 통해 내부까지 오염됐을 수 있습니다. 따라서 다음과 같은 식품은 무조건 폐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.
- 껍질이 얇은 과일류 (딸기, 포도 등)
- 진공 포장이 아닌 제품 (즉석식품, 플라스틱 밀봉 등)
- 일회용 포장지가 손상된 제품
-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
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, ‘아깝다’는 생각보다 ‘위험하다’는 판단을 먼저 해야 합니다. 식품의 손실보다 더 큰 손실은 건강 피해입니다.
2. 정전 및 냉장 · 냉동 보관 실패 시 식품 취급법
정전은 단 몇 시간으로도 냉장·냉동고의 내부 온도를 크게 변화시켜 식품을 부패시키기에 충분합니다. 많은 사람들은 냉장고가 닫혀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, 냉기가 유지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.
▢ 식품 보관 기본 온도 수칙
- 냉장 보관은 5°C 이하
- 냉동 보관은 -18°C 이하
이 기준은 단순한 권장사항이 아니라, 식품 내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. 5°C 이상으로 온도가 상승할 경우 세균은 급격히 증식하며, 냉동 식품 역시 -10°C 이상에서 해동과 재결빙이 반복되면 품질과 안전성이 떨어집니다.
▢ 정전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
- 정전 지속 시간이 2시간 이내라면 대부분의 식품은 안전합니다.
- 4시간 이상 정전되었다면 냉장식품은 폐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.
- 냉동식품은 완전히 녹지 않은 상태라면 다시 냉동해도 되지만, 이미 해동된 경우에는 절대로 재냉동하지 마십시오.
▢ 다음과 같은 식품은 정전 후 절대로 섭취하지 않아야 합니다.
- 생고기, 생선류 (해동된 후 냄새가 나지 않아도 위험)
- 유제품류 (우유, 치즈, 요거트)
- 조리된 음식 (반찬, 국류 등)
정전 시 냉장고를 자주 여닫지 않는 것이 내부 온도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. 미리 아이스팩, 드라이아이스 등을 준비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.
3. 조리기구와 손 위생은 생명선
재난 상황에서 가장 간과되기 쉬운 것이 ‘조리도구’와 ‘조리 공간’의 위생입니다. 식재료 자체보다도 조리 과정에서 오염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.
▢ 조리기구 소독 방법
- 세척 후, 살균·소독제나 희석된 락스(가정용 기준으로 물 1리터에 락스 1작은술) 용액에 5분 이상 담그기
- 깨끗한 물로 헹구고 완전히 건조
- 나무 도마, 천 행주 등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일회용 제품 사용 권장
특히 나무 도마나 행주는 미세한 틈새에 세균이 서식하기 쉬워, 건조만으로는 충분히 소독되지 않습니다. 가능한 한 플라스틱 도마나 스테인리스 기구를 사용하고, 소독 후 잘 말려야 합니다.
▢ 손 씻기는 기본 중의 기본
음식 조리 전, 조리 중, 조리 후 매번 손을 씻는 습관이 필요합니다.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손 세정제나 비누가 부족할 수 있으므로, 물티슈와 알코올 손소독제를 구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. 외부활동 후에는 반드시 흐르는 물과 비누로 30초 이상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합니다.
재난 이후 ‘괜찮겠지’라는 방심은 가장 위험한 태도입니다. 위에서 설명한 모든 수칙의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.
"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, 섭취하지 말고 버리자."
냄새나 색깔이 멀쩡하더라도,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위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.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, 노약자, 임산부는 식중독에 취약하므로 더욱 철저한 주의가 필요합니다.
식품안전은 우리의 일상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실질적인 대응이며,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.